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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네스의 탄생

드래곤버니 2020. 5. 1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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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 하면 떠오르는 것 펍, 아일랜드 식탁, 영화 원스 등등.

그 중에서도 아일랜드나 영국하면 펍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펍Pup은 Public House의 약자로 아일랜드나 영국의 선술집, 호프집 같은 것을 의미한다.

요새는 우리나라에서도 홍대 펍, 강남 펍 등으로 펍이란 말을 자주 쓴다.

 

아일랜드의 펍하면 기네스가 떠오른다.

흑맥주 특유의 쌉살하면서도 깊은 풍미로 기네스 맥주는 흑맥주 계에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위상을 단단히 굳힌 맥주이다.

사실 이 흑맥주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맥주이다. 흑맥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굉장한 맥주는 없다. 

하지만 흑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한 모금도 마시기 어려운 맥주이다.

흑맥주 특유의 씁슬함과 달콤한 맛이 일반 맥주의 시원한 맛과 다르게 음식이 주는 풍미를 갖추고 있어서인지 모르겠다. 보리를 볶아서 만들고(그래서 씁쓸한 맛이 난다. 약간 탄맛 같기도 하다.) 거품은 크림처럼 부드럽고 풍성하다.

 

세계 150여 개국에서 하루에 1,000만 잔 이상 판매된다고 하며 1755년부터 시작되었으니 

올해로 벌써 265년이라는 역사를 갖고 있다.

 

창시자인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는 30세가 되던 해 아일랜드의 더블린 북동쪽에 위치한 레익슬립이라는 마을의

양조장에서 맥주사업을 시작했다.

아서 기네스가 맥주사업을 하게 된 배경은 아버지 리처드 기네스의 역할이 컸다.

아서 기네스의 아버지인 리처드는 천주교의 주교였던 아서 프라이스의 집사로 일했는데, 집사의 업무 중에는 맥주 양조 업무도 있었다. 그런데 리처드의 양조기술,

정확히는 흑맥주 제조기술이 몹시도 뛰어나서 그 마을에서는 명성이 자자했었다.

게다가 프라이스 주교 아래서 산수나 글자등을 익혔고 이는 후에 맥주 사업을 하기 위한 기초 지식을 탄탄히 해

주었음에 틀림없었다. 

프라이스 대주교는 기네스 부자에게 죽어서까지 후원자가 되어주었는데 1752년 세상을 떠나면서 100파운드라는 거금을 유산으로 남겨 준 것이다. 

 

아서 기네스 초상화  출처 위키피디아

리처드는 맥주제조 기술을 아들인 아서 기네스 에게 전수했고, 1755년 기네스는 레익슬립에 양조장을 차리게 된다.

아서 기네스는 1759년 더블린으로 이사를 하고 설비도 없고 사용도 중단된 한 양조장을 계약금 단돈 100파운드(약 15만 원)에 매년 45파운드(약 7만 원)로 무려 9,000년간 임대하기로 한 계약을 맺는다.

이 때 프라이스 주교가 물려준 유산인 100파운드로 계약을 했으니 프라이스 주교의 유산이 실질적으로 오늘의 기네스를 있게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000년이라는 어마어마한 기간을 고려해 보면 아마 그 양조장 주인은 시대가 변해도 물가가 이대로 일것이라고

생각하여 자자손손 임대료를 물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양조장은 거의 버려져서 방치상태여서 팔아봤자 돈도 안되는데 매년 임대료를 준다니 이보다 더 좋은 계약이 없다고

생각한 듯하다. 

만약 지금까지 265년간 물가가 전혀 상승하지 않았다면 양조장 주인의 자손은 그냥 년간 45파운드를 꼬박꼬박 받는

좋은 계약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야말로 기네스 가家와 양조장 주인 집안이 서로 윈윈하는 거래.

 

아무튼 아서 기네스는 프라이스 주교의 100파운드와 맥주제조 기술을 밑천삼아 맥주회사를 시작했지만 품질 좋은

맥주를 생산하다 보니 약 20년간 경영난에 시달리게 된다.

기네스가 20년이나 경영난에 시달리면서도 질 좋은 흑맥주를 생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그의 아내 올리비아의

덕분이었을 것이다. 1761년 기네스는 올리비아 화이트모어와 결혼했는데 올리비아는 상류층 출신의 부자로 집안은 금융계의 거물인 가문이었다. 둘은 사이가 매우 좋아(사이가 좋은건지 그냥 그 시대때는 그런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이를 10명을 낳았다고 한다.

 

경영이 어느정도 되었던 1769년 부터 아서 기네스는 직원들에게 의료 보험과 연금을 주는 후생복지를 실시하는데 이는 아일랜드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진데다 파격적인 직원복지였다. 또한 같은 해 기네스 맥주는 수출을 시작한다.

 

기네스의 직원 복리 후생은 그 이후로도 파격적인 부분이 많았다.

1920년대에는 기네스 회사 직원들은 치과진료를 포함한 의료비 혜택, 장례비 지원, 직원교육, 독서실 이용, 간식 제공에 더해 2 파인트(약 1L)의 기네스 맥주를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직원 복리를 중시하는 기네스의 정신은 아마 기네스 사社를 더욱 견고한 회사로 만들었을 것이다.

 

기네스도 처음 양조장을 시작했을때 에일 맥주와 흑맥주 둘 다 생산했다.

그 당시 영국은 맥주의 가격을 통제했기 때문에 한동안은 에일 맥주만을 생산했다. 

그러나 초기부터 기네스의 흑맥주는 인기가 있었고 사람들이 점점 더 흑맥주를 좋아하자 1799년 에일 맥주 생산을

중단하고 포터 맥주만 생산하기로 결정한다.

 

에일 맥주 

맥주의 발효 방식 중 하나로 맥주 통 위쪽에서 효모를 발효시키는 방식(상면발효방식)으로 향과 맛이 아주 짙다.

포터 맥주

짐꾼 이라는 '포터'에서 온 단어로 산업혁명 당시 아일랜드나 영국 등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지자 이들을 주로

포터라고 불렀다. 

포터들이 주로 찾는 맥주를 포터맥주라 일컬어 졌는데 보통 포터맥주는 쓴 맛과 탄맛이 에일맥주에 비해 적고 단맛이

나서 고된 일을 하는 노동자들이 주로 찾았다. 

현재 흑맥주 특유의 떫떠름하고 쓴맛을 좋아하지 않으면 포터맥주를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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